선다 피차이의 구글 2기, 어떻게 달라질까

페이지, 8년만에 CEO 사임…'기타부문' 등 처리 관심

인터넷입력 :2019/12/04 14:33    수정: 2019/12/04 15:09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구글 공동창업자 래리 페이지가 지주회사 지주회사 알파벳 출범 4년만에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난다. 2011년 구글 CEO 복귀 때부터 따지면 8년 만에 일상 경영에서 손을 뗀다.

대신 선다 피차이 구글 CEO가 알파벳 CEO를 겸하기로 했다. 선다 피차이는 앞으로 구글 뿐 아니라 알파벳 전체 경영까지 진두 지휘하게 됐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등 구글 공동 창업자는 3일(현지시간) 이 같은 사실을 공식 선언했다.

구글 뿐 아니라 지주회사인 알파벳 CEO까지 겸직하게 된 선다 피차이. (사진=구글)

둘은 2015년 알파벳 출범 이후 각각 CEO와 사장을 맡아왔다.검색을 비롯한 돈 되는 핵심 사업은 구글에 남겨두고 자율주행차, 드론 같은 실험적인 사업은 독립회사로 분리하는 것이 알파벳 출범의 핵심 골자였다.

■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퇴진이 이례적인 이유

래리 페이지는 이날 편지를 통해 “알파벳이 잘 정착됐고, 구글과 다른 사업 부문이 독립회사로 효과적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경영 구조를 단순화할 때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구글은 1998년 출범했다. 사람으로 치면 이제 21세가 됐다”면서 “이젠 매일 잔소리를 하는 대신 충고하고 사랑하는 자랑스러운 부모 역할을 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공동 창업자들이 밝힌 내용만 보면 사실상 경영 일선에서 손을 뗀다는 의미다. 알파벳 출범 4년 만에 엄청난 변화를 꾀하는 모양새다.

두 공동 창업자의 퇴진은 '깜짝 발표'에 가까웠다. 최근까지 별다른 조짐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공동 창업자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것이 처음은 아니다.

래리 페이지는 2001년 에릭 슈미트에게 CEO 자리를 넘긴 적 있다. 1998년 구글 창업 이후 3년 만이었다.

(사진=씨넷)

하지만 당시엔 '자발적 퇴진'은 아니었다. 초기 투자자인 클라이너 퍼킨스 같은 벤처캐피털(VC)들의 압력 때문이었다. 당시 "전문 경영인을 영입하라"는 압력 때문에 에릭 슈미트에게 CEO 자리를 넘겼다.

지금은 그 때와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2001년의 퇴진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면 지금은 자발적 퇴진에 가깝다. 두 공동 창업자의 퇴진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오는 이유다.

이번 퇴진은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왜 퇴진했을까.

둘째. 선다 피차이 체제는 두 공동 창업자 때와 어떻게 달라질까.

■ 창립 21년 구글, 새로운 시대로 접어드나

올해로 창립 21년째를 맡는 구글은 특별한 회사다. 막대한 수익을 올리면서도 특유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유지해 왔다. TGIF로 불리는 금요일 오후 전직원 타운홀 미팅 같은 것들을 통해 초기 정신을 계속 이어왔다.

당장 수익으로 연결되지 않더라도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것도 구글 만의 장점이었다. '20% 법칙'으로 알려진 이 정책 덕분에 지메일을 비롯한 다양한 혁신 상품을 내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구글의 분위기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고위 경영자의 성추문에다 중국 정부 검열을 감안한 검색엔진 개발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불거졌다.

특히 '안드로이드의 아버지'로 불리는 앤디 루빈 성추문 처리를 둘러싸고 내부 반발이 적지 않았다. 루빈에게 막대한 퇴직금을 안겨주는 조치에 반발해 구글 직원들이 대대적인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성 추문 때문에 구글에서 퇴사한 안드로이드 대부인 앤디 루빈. (사진=씨넷)

이 과정에서 구글 경영진이 반대 시위를 주도한 직원들에게 보복 조치를 가했다는 고발이 제기됐다. 이 문제를 둘러싼 법정 공방 가능성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중국 시장을 겨냥한 '드래곤 플라이 프로젝트'도 구글 내부에 엄청난 파문을 몰고 왔다. 결국 직원들의 반발 때문에 '드래곤 플라이' 프로젝트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을 거치면서 구글 특유의 문화가 상당 부분 희석됐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그 상징적인 조치가 'TGIF 폐지'다.

선다 피차이는 지난 10월 매주 열렸던 TGIF 미팅을 폐지하고 대신 월간 회의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구글 문화의 상징이나 다름 없던 '타운홀 미팅'이 일반적인 월례 간부회의로 바뀐 셈이다.

이 조치는 언뜻 보기엔 별 것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대학원생의 벤처로 출발한 구글의 1기 문화가 종말을 고하는 신호탄으로 봐도 크게 무리는 없어 보인다.

따라서 두 공동 창업자 퇴진은 '혁신 회사' 구글이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해석된다.

■ 선다 피차이 시대는 어떻게 달라질까

그렇다면 '선다 피차이 시대'는 두 공동 창업자 시절과 크게 달라질까? 이 질문에 대해선 선뜻 답을 내놓기 힘들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긴 했지만 여전히 두 공동 창업자의 영향력을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2001년 마이크로소프트(MS) 사례를 통해 짐작해볼 수 있다. 당시 MS는 반독점 소송에 휘말리면서 미국 법무부로부터 회사 분할 압박을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빌 게이츠가 CEO 자리를 친구인 스티브 발머에게 넘겨줬다. MS 역사상 첫 CEO 교체였다.

하지만 스티브 발머에게 CEO로 넘겨준 뒤에도 여전히 빌 게이츠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피차이 역시 비슷한 상황으로 내몰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페이지와 브린은 각각 회사 의결권의 25.9%와 25.1%를 갖고 있다. 둘이 합하면 과반수를 훌쩍 넘는다.

구글 공동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왼쪽)와 세르게이 브린. (사진=씨넷)

이게 가능한 건 알파벳 특유의 지배구조 때문이다.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알파벳은 의결권 있는 클래스 B 주식 한 주당 10건의 표결권을 부여한다. 덕분에 두 공동 창업자는 갖고 있는 지분에 비해 엄청나게 높은 의결권을 행사한다.

일상 업무에선 손을 떼지만 여전히 알파벳에 대해선 막강한 지배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피차이가 자기 색깔을 낼 가능성도 적지 않다. 특히 주목되는 건 알파벳 지주회사 체제에서 '기타 분야(Other Bets)'로 분류된 각종 첨단 산업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부분이다.

알파벳 기타 분야에는 다양한 혁신 산업이 포함돼 있다. 그 중엔 자율주행 사업인 웨이모 처럼 수 년 내 새로운 먹거리가 될 가능성이 있는 분야도 있다. 하지만 다분히 실험적인 사업도 적지 않다.

비즈니스 못지 않게 '개인적 성향'을 강하게 밀어부칠 수 있는 창업자이기에 가능했던 사업들도 있다. 전문 경영자인 피차이가 이런 사업을 어느 정도 정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물론 공동 창업자들이 동의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긴 하지만.

■ "창업자들, 회사 힘든 때 2선 퇴진" 비판도

하지만 더 큰 질문은 따로 있다. "선다 피차이로 경영권을 이전한 것이 정말로 큰 변화일까"란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이다.

이에 대해 미국 IT전문매체 리코드는 조금 냉혹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겉보기엔 엄청나게 큰 사건 같지만 구글 직원에겐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하기 힘들다”고 비판했다.

일단 래리 페이지는 검색 등 구글 핵심 사업에서 손을 뗀 지는 꽤 오래됐다. 그 동안 페이지는 자율주행사업인 웨이모나 헬스케어 사업 칼리코 등에 주력해 왔다.

하지만 이 사업을 할 때도 래리 페이지가 회사를 대표해 외부 활동을 한 적은 거의 없었다. 미국 의회 등에서 관련 사건으로 청문회를 할 때도 선다 피차이가 대신 출석했다.

선다 피차이가 구글 뿐 아니라 지주회사 알파벳의 CEO까지 겸하게 됐다. (사진=씨넷)

회사 내에서도 래리 페이지와 접촉하는 인물은 극히 드물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월엔 블룸버그가 “래리 페이지는 어디 있는가?”란 칼럼을 통해 이 문제를 꼬집기도 했다.

한 구글 직원은 리코드와 인터뷰에서 “이미 분명한 것을 공식화한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오히려 지금 시점에 알파벳 CEO와 사장 직에서 물러나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현재 미국 정부는 구글, 페이스북을 비롯한 주요 IT 기업에 대해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공화당 뿐 아니라 민주당 차기 대권 주자들도 강력한 제재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늘 적대적이었던 유럽연합(EU)도 최근 들어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EU는 최근 구글의 데이터 수집 관행에 대한 예비 조사에 착수했다. 최근 3년 사이에 10조원을 웃도는 벌금을 부과받았던 구글이 또 다시 거액의 벌금 폭탄을 맞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앞에서 언급했던 사내 갈등 역시 만만한 상황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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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공동 창업자들이 뒤로 빠지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리코드에 따르면 구글 내부 통신망엔 “어려운 상황에서 경영 일선에서 떠나는 것에 대해 슬픔 감정을 느낀다”는 등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